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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혼후묘(海昏侯墓) 출토 한나라 죽간 《논어》한국어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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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해혼후(海昏侯)의 성은 유(劉)이고, 이름은 하(賀)이다. 한나라 무제(武帝)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무제의 서자인 창읍애왕(昌邑哀王) 유박(劉髆)이다. 왕위에 오른 지 27일 만에 폐위되었기 때문에 폐제(廢帝)라고 불리며 시호나 묘호는 없다.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는 2011년 4월에 발굴이 시작하였으며 그후 주목할 만한 발견이 매우 많았다.

해혼한간

2015년 8월에는 약 5,200여 매의 간독(簡牘) 자료를 발견하였다. 그 내용은 《詩》부터 《禮》, 《春秋》, 《論語》, 《孝經》, 심지어는 한나라 때 보드게임의 일종인 《六博》에 이르기까지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죽간의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해서 보강 작업을 한 후에야 죽간을 떼어내고 탈색을 해서 정식으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죽간 발견에는 하나의 일화가 전해진다. 발굴 당시에는 죽간이 큰 진흙더미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발굴자들은 당연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처리하기 전에 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해보니 그 속에 죽간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들은 진흙더미를 보존하기로 결정했고 이후에 진흙 속에서 죽간(이하 해혼한간)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해혼한간 《논어》는 현재 500여 매가 확인되며 대부분 잔간(殘簡)이다. 소수의 완전한 간을 통해서 한 간에 약 24자가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현재까지 일부 공개된 해혼한간 《논어》를 살펴보겠다.

〈옹야(雍也)〉

【주석】

※ 《집주》〈옹야〉 1장에 해당한다.

[1] 통행본에는 也가 없다.

 

【번역】

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은 남면시킬 만하다.”

 

【소결】

특이사항 없음.

 

【주석】

※ 《집주》〈옹야〉 12장에 해당한다.

[1] 王楚寧, 張予正은 爾로 예정(隷定)했으나 자형 상 耳에 가까워 보인다. 후속 발표와 연구를 기다린다.

【번역】

①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되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인재를 얻었느냐......

 

【소결】

특이사항 없음.

 

【주석】

※ 《집주》〈옹야〉 21장에 해당한다.

[A] 통행본에는 智가 知로 되어 있다. 해혼본에서는 智로 知와 智를 모두 기록하고 있다.

 

【번역】

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하며 지자는 동적이고 인......

 

【소결】

특이사항 없음.

 

〈선진(先進)〉

【주석】

※ 《집주》〈선진〉 25장에 해당한다.

[1] “冠者五六人”으로부터 이어지는 것이 명백하다.

[2] 陳侃理는 頌으로 읽고 ‘낭송하다’로 풀이했다.

[3] 왼쪽이 보이지 않으나 斤 아래의 긴 가로획으로 추정컨대 近일 가능성이 높으며 沂로 읽을 수 있다. 

[4] 陳侃理는 諷으로 읽고 ‘노래하다’로 풀이했다.

[5] 통행본의 舞雩에 해당한다. 

[6] 적외선 사진을 통해 왼쪽이 氵편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오른쪽에 묻은 오물을 제거한 뒤 丙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丙을 성부로 하는 글자는 永을 성부로 하는 글자와 통가 관계가 성립한다. 따라서 통행본을 따라 詠으로 읽을 수 있다. 陳侃理는 氵편방에 주목해 滂으로 읽었다. 丙을 성부로 하는 글자는 旁을 성부로 하는 글자와도 역시 통가 관계가 성립한다

[7] 䢜는 歸의 이체자이다. 陳侃理는 饋로 읽고 ‘술과 음식을 바치다’로 풀이했다. 饋로 읽을 수도 있지만 문맥 상 글자 그대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8] 箴은 잔간과 철합(綴合)한 뒤에 모양이 분명해졌다. 통행본에는 點으로 되어 있다. 《사기》〈중니제자열전〉에서는 蒧으로 되어 있다. 모두 曾晳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9] “三子者出, 曾晳後.”로 이어진다. 해당 부분의 죽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번역】

① ......동자 예닐곱 명과 기수에서 (글을) 낭송하고 무우에서 노래하여 비가 내리게 하고서 돌아오겠습니다.”

② 공자께서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나는 점에게 동의한다.”

③ 세......

 

【소결】

이 장은 역대로 의미 해석에 논란이 많았다. 하안(何晏)의 《논어집해》에서는 포함(包咸)의 설을 인용하여 “莫(暮)春은 계춘(季春) 3월이다. 春服旣成은 홑옷이나 겹옷을 입을 때이다. 나는 (冠者) 5, 6인과 동자(童子) 6, 7인을 얻어 기수 가에서 목욕하고 무우단 아래에서 서늘한 바람 쐬고서 선왕의 도를 노래하며 부자(夫子)의 문하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이다.”라고 해석했다. 황간의 《논어의소》에서도 “산책하고 헤엄치고 노래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로써 후한 시기에는 이와 같은 해석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충은 《논형》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주나라 4월은 정세(正歲, 하력) 2월이니 아직 추운데 어찌 목욕하고 바람에 몸을 말리겠는가? ”라고 지적했으며 浴을 涉의 뜻으로 해석했다. 채옹(蔡邕)의 《월령장구(月令章句)》에서는 “부정을 없애는 의식”으로 해석했다. 한유(韓愈)는 浴을 沿으로 고쳐서 해석하였다. 주희(朱熹)의 《집주》는 채옹의 말을 따랐으나, “한서 지리지에 온천이 있다고 했으니 이치 상 혹 그럴 듯하다.”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아마 왕충이 지적한 것과 같이 야외에서 목욕할 정도로 온난한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의식한 것 같다. 명나라, 청나라 때는 대부분 주희의 설을 따랐다. 陳侃理는 해혼본의 容을 頌으로 읽는데 容과 公은 상고음이 유사하여 통용될 수 있다. 또 해혼한간 《詩》에는 魯容, 周容이라는 말이 보이는데 각각 魯頌, 周頌을 의미하며 容을 頌으로 읽을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는 風도 諷으로 읽는데 이는 왕충 등이 이미 그과 같이 주장한 일이 있다. 의 경우 통행본을 따라 詠으로 읽을 수 있지만 陳侃理는 이 글자가 水를 의미 요소로 하는 점과  라는 지명의 의미를 고려하여 滂으로 읽었다. 필자는 이 의견에 매우 동의한다. 그러나 䢜를 饋로 읽는 부분에 대해서는 글자 그대로 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堯)〉

 

【주석】

※ 《집주》〈요왈〉 3장에 해당한다.

 

【번역】

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가 없으며,

② 예제를 알지 못하면 설 수가 없으며,

③ 언어를 알지 못하면 ......없다.”

 

【소결】

특이사항 없음.

 

〈지도(智道)〉

【주석】

※ 통행본에 보이지 않는다. 하안은 “제나라 《논어》는 〈문왕(問王)〉, 〈지도(知道)〉편이 있으니 노나라 《논어》보다 2편이 많다.”라고 말하였는데, 이 죽간은 그 〈지도〉편의 수장(首章)으로 추정된다. 죽간의 배면에 智道 두 글자가 있다는 점, 첫 장의 (孔)子(曰) 다음 단어로 편제를 삼는 것이 논어의 관행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합당한 추정이다.

[A] 王楚寧은 昜을 易으로 읽었다. 두 글자는 자형이 비슷해서 자주 혼용된다. 진한 시대 간독 자료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龐光華, 周飈, 吳珺은 昜=을 蕩蕩으로 읽고 ‘넓고 평탄한 모습’으로 풀이했다. 필자는 王楚寧의 의견에 동의한다.

 

【번역】

① 공자께서는 도가 쉽다는 것을 아셨으니 쉽다 쉽다 하신 지가 여러 날이었다.

②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 도의 아름다움이여, 아무도 이를 쓰지 못하는구나.”

 

【소결】

이 죽간의 내용은 肩水金關遺址에서 출토된 죽간에서도 일부 확인되며, 전래문헌 가운데 한시외전과 공자가어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보인다. 따라서 한대에 이미 널리 알려진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통행본의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라는 문장(《집주》〈옹야〉15장)을 참고하여 이해할 것을 제안하며, 此道란 추정컨대 文武周公을 비롯한 先王之道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주석】

※ 역시 통행본에 보이지 않는다. 죽간 배면에 起智道廿一이라는 글자가 있기 때문에 〈지도〉편의 한 장으로 추정된다. 주된 내용은 후군과 무마자기라는 인물의 대화이다. 무마자기는 무마시(巫馬施)이며 통행본에는 단 한 차례만 등장한다(《집주》〈술이〉31장 참고).

[1]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陳侃理는 《사기》〈중니제자열전〉에 나오는 后處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고 했다.

[2] 후군의 이름이다. 어떻게 읽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후속 연구를 기다린다.

[3] 陳侃理는 寬과 施의 의미가 비슷하기 때문에 무마시와 동일인이라고 보았다.

 

【번역】

① 후군이 무마자기에게 물었다. “그 생물을 보고 나서 그 죽은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을 군자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② (무마자기)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③ 후군이 말하였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④ 무마자관이 말하였다.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⑤ 후군이 물러나 생각을 여러 달 하고서는 말하였다. “저도 (그 생물을 보고 나서는 그 죽은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소결】

이 장의 내용은 《맹자》〈양혜왕上〉에 보이는 “군자가 금수를 대하는 것은 그 삶을 보고 그 죽음을 보지 못하며 그 소리를 듣고 그 고기를 차마 먹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이다.”라는 말과 유사하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으로 사료된다. 하나는 공자 제자들 사이에서 이미 맹자와 유사한 사상이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思孟學派의 인물 중 하나가 공자 제자의 말에 의탁해 새로 만든 내용이라는 것이다. 제현들의 고찰을 기다린다.


司馬遷, 2019, 《史記》 第七册, 中華書局

李成市、尹龍九、金慶浩, 2020, 「平壤 貞柏洞364號墳출토 竹簡《論語》에 대하여」,『木簡과 文字』4, 韓國木簡學會

朱鳳翰 主編, 2020, 《海昏簡牘初論》, 北京大學出版社

王楚寧,張予正:海昏侯墓《齊論·問王》章句蠡測(http://www.fdgwz.org.cn/Web/Show/3090#_edn1)

王楚寧:海昏侯墓出土《論語·知道》篇小考(http://www.fdgwz.org.cn/Web/Show/2887)

龐光華, 周飈, 吳珺:海昏侯墓本《论语》“昜昜”考

심재훈 교수의 중국고대사 특강 - 비운의 황제 해혼후묘(https://youtu.be/FvSSqceR2zI)


https://youtu.be/qS2y_pPLA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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