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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혼후묘(海昏侯墓) 출토 한나라 죽간 《논어》한국어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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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해혼후(海昏侯)의 성은 유(劉)이고, 이름은 하(賀)이다. 한나라 무제(武帝)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무제의 서자인 창읍애왕(昌邑哀王) 유박(劉髆)이다. 왕위에 오른 지 27일 만에 폐위되었기 때문에 폐제(廢帝)라고 불리며 시호나 묘호는 없다.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는 2011년 4월에 발굴이 시작하였으며 그후 주목할 만한 발견이 매우 많았다.

해혼한간

2015년 8월에는 약 5,200여 매의 간독(簡牘) 자료를 발견하였다. 그 내용은 《詩》부터 《禮》, 《春秋》, 《論語》, 《孝經》, 심지어는 한나라 때 보드게임의 일종인 《六博》에 이르기까지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죽간의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해서 보강 작업을 한 후에야 죽간을 떼어내고 탈색을 해서 정식으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죽간 발견에는 하나의 일화가 전해진다. 발굴 당시에는 죽간이 큰 진흙더미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발굴자들은 당연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처리하기 전에 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해보니 그 속에 죽간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들은 진흙더미를 보존하기로 결정했고 이후에 진흙 속에서 죽간(이하 해혼한간)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해혼한간 《논어》는 현재 500여 매가 확인되며 대부분 잔간(殘簡)이다. 소수의 완전한 간을 통해서 한 간에 약 24자가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현재까지 일부 공개된 해혼한간 《논어》를 살펴보겠다.

〈옹야(雍也)〉

【주석】

※ 《집주》〈옹야〉 1장에 해당한다.

[1] 통행본에는 也가 없다.

 

【번역】

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은 남면시킬 만하다.”

 

【소결】

특이사항 없음.

 

【주석】

※ 《집주》〈옹야〉 12장에 해당한다.

[1] 王楚寧, 張予正은 爾로 예정(隷定)했으나 자형 상 耳에 가까워 보인다. 후속 발표와 연구를 기다린다.

【번역】

①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되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인재를 얻었느냐......

 

【소결】

특이사항 없음.

 

【주석】

※ 《집주》〈옹야〉 21장에 해당한다.

[A] 통행본에는 智가 知로 되어 있다. 해혼본에서는 智로 知와 智를 모두 기록하고 있다.

 

【번역】

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하며 지자는 동적이고 인......

 

【소결】

특이사항 없음.

 

〈선진(先進)〉

【주석】

※ 《집주》〈선진〉 25장에 해당한다.

[1] “冠者五六人”으로부터 이어지는 것이 명백하다.

[2] 陳侃理는 頌으로 읽고 ‘낭송하다’로 풀이했다.

[3] 왼쪽이 보이지 않으나 斤 아래의 긴 가로획으로 추정컨대 近일 가능성이 높으며 沂로 읽을 수 있다. 

[4] 陳侃理는 諷으로 읽고 ‘노래하다’로 풀이했다.

[5] 통행본의 舞雩에 해당한다. 

[6] 적외선 사진을 통해 왼쪽이 氵편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오른쪽에 묻은 오물을 제거한 뒤 丙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丙을 성부로 하는 글자는 永을 성부로 하는 글자와 통가 관계가 성립한다. 따라서 통행본을 따라 詠으로 읽을 수 있다. 陳侃理는 氵편방에 주목해 滂으로 읽었다. 丙을 성부로 하는 글자는 旁을 성부로 하는 글자와도 역시 통가 관계가 성립한다

[7] 䢜는 歸의 이체자이다. 陳侃理는 饋로 읽고 ‘술과 음식을 바치다’로 풀이했다. 饋로 읽을 수도 있지만 문맥 상 글자 그대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8] 箴은 잔간과 철합(綴合)한 뒤에 모양이 분명해졌다. 통행본에는 點으로 되어 있다. 《사기》〈중니제자열전〉에서는 蒧으로 되어 있다. 모두 曾晳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9] “三子者出, 曾晳後.”로 이어진다. 해당 부분의 죽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번역】

① ......동자 예닐곱 명과 기수에서 (글을) 낭송하고 무우에서 노래하여 비가 내리게 하고서 돌아오겠습니다.”

② 공자께서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나는 점에게 동의한다.”

③ 세......

 

【소결】

이 장은 역대로 의미 해석에 논란이 많았다. 하안(何晏)의 《논어집해》에서는 포함(包咸)의 설을 인용하여 “莫(暮)春은 계춘(季春) 3월이다. 春服旣成은 홑옷이나 겹옷을 입을 때이다. 나는 (冠者) 5, 6인과 동자(童子) 6, 7인을 얻어 기수 가에서 목욕하고 무우단 아래에서 서늘한 바람 쐬고서 선왕의 도를 노래하며 부자(夫子)의 문하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이다.”라고 해석했다. 황간의 《논어의소》에서도 “산책하고 헤엄치고 노래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로써 후한 시기에는 이와 같은 해석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충은 《논형》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주나라 4월은 정세(正歲, 하력) 2월이니 아직 추운데 어찌 목욕하고 바람에 몸을 말리겠는가? ”라고 지적했으며 浴을 涉의 뜻으로 해석했다. 채옹(蔡邕)의 《월령장구(月令章句)》에서는 “부정을 없애는 의식”으로 해석했다. 한유(韓愈)는 浴을 沿으로 고쳐서 해석하였다. 주희(朱熹)의 《집주》는 채옹의 말을 따랐으나, “한서 지리지에 온천이 있다고 했으니 이치 상 혹 그럴 듯하다.”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아마 왕충이 지적한 것과 같이 야외에서 목욕할 정도로 온난한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의식한 것 같다. 명나라, 청나라 때는 대부분 주희의 설을 따랐다. 陳侃理는 해혼본의 容을 頌으로 읽는데 容과 公은 상고음이 유사하여 통용될 수 있다. 또 해혼한간 《詩》에는 魯容, 周容이라는 말이 보이는데 각각 魯頌, 周頌을 의미하며 容을 頌으로 읽을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는 風도 諷으로 읽는데 이는 왕충 등이 이미 그과 같이 주장한 일이 있다. 의 경우 통행본을 따라 詠으로 읽을 수 있지만 陳侃理는 이 글자가 水를 의미 요소로 하는 점과  라는 지명의 의미를 고려하여 滂으로 읽었다. 필자는 이 의견에 매우 동의한다. 그러나 䢜를 饋로 읽는 부분에 대해서는 글자 그대로 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堯)〉

 

【주석】

※ 《집주》〈요왈〉 3장에 해당한다.

 

【번역】

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가 없으며,

② 예제를 알지 못하면 설 수가 없으며,

③ 언어를 알지 못하면 ......없다.”

 

【소결】

특이사항 없음.

 

〈지도(智道)〉

【주석】

※ 통행본에 보이지 않는다. 하안은 “제나라 《논어》는 〈문왕(問王)〉, 〈지도(知道)〉편이 있으니 노나라 《논어》보다 2편이 많다.”라고 말하였는데, 이 죽간은 그 〈지도〉편의 수장(首章)으로 추정된다. 죽간의 배면에 智道 두 글자가 있다는 점, 첫 장의 (孔)子(曰) 다음 단어로 편제를 삼는 것이 논어의 관행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합당한 추정이다.

[A] 王楚寧은 昜을 易으로 읽었다. 두 글자는 자형이 비슷해서 자주 혼용된다. 진한 시대 간독 자료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龐光華, 周飈, 吳珺은 昜=을 蕩蕩으로 읽고 ‘넓고 평탄한 모습’으로 풀이했다. 필자는 王楚寧의 의견에 동의한다.

 

【번역】

① 공자께서는 도가 쉽다는 것을 아셨으니 쉽다 쉽다 하신 지가 여러 날이었다.

②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 도의 아름다움이여, 아무도 이를 쓰지 못하는구나.”

 

【소결】

이 죽간의 내용은 肩水金關遺址에서 출토된 죽간에서도 일부 확인되며, 전래문헌 가운데 한시외전과 공자가어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보인다. 따라서 한대에 이미 널리 알려진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통행본의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라는 문장(《집주》〈옹야〉15장)을 참고하여 이해할 것을 제안하며, 此道란 추정컨대 文武周公을 비롯한 先王之道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주석】

※ 역시 통행본에 보이지 않는다. 죽간 배면에 起智道廿一이라는 글자가 있기 때문에 〈지도〉편의 한 장으로 추정된다. 주된 내용은 후군과 무마자기라는 인물의 대화이다. 무마자기는 무마시(巫馬施)이며 통행본에는 단 한 차례만 등장한다(《집주》〈술이〉31장 참고).

[1]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陳侃理는 《사기》〈중니제자열전〉에 나오는 后處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고 했다.

[2] 후군의 이름이다. 어떻게 읽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후속 연구를 기다린다.

[3] 陳侃理는 寬과 施의 의미가 비슷하기 때문에 무마시와 동일인이라고 보았다.

 

【번역】

① 후군이 무마자기에게 물었다. “그 생물을 보고 나서 그 죽은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을 군자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② (무마자기)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③ 후군이 말하였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④ 무마자관이 말하였다.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⑤ 후군이 물러나 생각을 여러 달 하고서는 말하였다. “저도 (그 생물을 보고 나서는 그 죽은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소결】

이 장의 내용은 《맹자》〈양혜왕上〉에 보이는 “군자가 금수를 대하는 것은 그 삶을 보고 그 죽음을 보지 못하며 그 소리를 듣고 그 고기를 차마 먹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이다.”라는 말과 유사하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으로 사료된다. 하나는 공자 제자들 사이에서 이미 맹자와 유사한 사상이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思孟學派의 인물 중 하나가 공자 제자의 말에 의탁해 새로 만든 내용이라는 것이다. 제현들의 고찰을 기다린다.


司馬遷, 2019, 《史記》 第七册, 中華書局

李成市、尹龍九、金慶浩, 2020, 「平壤 貞柏洞364號墳출토 竹簡《論語》에 대하여」,『木簡과 文字』4, 韓國木簡學會

朱鳳翰 主編, 2020, 《海昏簡牘初論》, 北京大學出版社

王楚寧,張予正:海昏侯墓《齊論·問王》章句蠡測(http://www.fdgwz.org.cn/Web/Show/3090#_edn1)

王楚寧:海昏侯墓出土《論語·知道》篇小考(http://www.fdgwz.org.cn/Web/Show/2887)

龐光華, 周飈, 吳珺:海昏侯墓本《论语》“昜昜”考

심재훈 교수의 중국고대사 특강 - 비운의 황제 해혼후묘(https://youtu.be/FvSSqceR2zI)


https://youtu.be/qS2y_pPLAIg

모성재에서 월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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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나 고대사상사 분야의 새로운 경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출토자료의 세기"가 될 것이다.1)

출토자료는 갑골 문자, 청동기 문자(금문), 백서(帛書), 죽간, 목간 등이 있다. 이번 게시글에서는 초나라 죽간, 줄여서 초간(楚簡)이라고 부르는 자료를 집중적으로 알아보겠다.

 

1. 곽점초간(郭店楚簡)

곽점초간은 1993년 중국 후난성(湖南省) 징먼시(荊門市) 궈뎬촌(郭店村, 곽점촌)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은 초나라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총 804매의 죽간이 함께 묻혀 있었다. 

 

내용:

- 老子甲、乙、丙

- 太一生水

- 緇衣

- 魯穆公問子思

- 窮達以時

- 五行

- 唐虞之道

- 忠信之道

- 成之聞之

- 尊德義

- 性自命出

- 六德

 

2. 상박초간(上博楚簡)


상박초간은 1994년 상하이박물관 관장 마청위안(馬承源)이 홍콩공동품경매시장에서 구매한 것이다. 경매시장에 등장했다는 것은 이전에 도굴되었음을 의미한다. 상하이박물관장전국초죽서(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출판, 흔히 줄여서 상박초간이라고 부른다. 총1,200여 매의 죽간이 확인되었다.

 

내용:

- 《孔子詩論》、《緇衣》、《性情論》

- 《民之父母》、《子羔》、《魯邦大旱》、《從政》、《昔者君老》、《容成氏》

- 《周易》、《恆先》、《仲弓》、《彭祖》

- 《採風曲目》、《逸詩》、《柬大王泊旱》、《昭王毀室》、《內豊》、《相邦之道》、《曹沫之陳》

- 《競建內之》、《鮑叔牙與隰朋之諫》、《季庚子問於孔子》、《姑成家父》、《君子為禮》、《弟子問》、《三德》、《鬼神之明·融師有成氏》

- 《競公瘧》、《孔子見季桓子》、《莊王既成·申公臣靈王》、《平王問鄭壽》、《平王與王子木》、《慎子曰恭儉》、《用曰》、《天子建州》(甲本)、《天子建州》(乙本)

- 《武王踐阼》、《鄭子家喪》、《君人者何必安哉》、《凡物流形》、《吳命》

- 《子道餓》、《顏淵問於孔子》、《成王既邦》、《命》、《王居》、《志書乃言》、《有皇將起》、《李頌》、《蘭賦》、《鶹鸝》
《成王為城濮之行(甲、乙本)》、《靈王遂申》、《陳公治兵》、《舉治王天下(五篇)》、《邦人不稱》、《史蒥問於夫子》、《卜書》

 

3. 청화간(淸華簡)

청화간은 2008년 칭화대학 졸업생 자오웨이궈(趙偉國)가 해외 경매로 구매한 것이다. 도굴 후 해외로 유입된 것이 경매시장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칭화대학장전국죽서(淸華大學藏戰國竹書)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출판, 흔히 줄여서 청화간이라고 부른다. 총 2,388매의 죽간이 확인되었다.

 

내용:

- 《尹至》、《尹誥》、《程寤》、《保訓》、《耆夜》、《金縢》、《皇門》、《祭公》、《楚居》

- 《繫年》

- 《傅說之命》、《周公之琴舞》、《芮良夫毖》、《良臣》、《祝辭》、《赤鵠之集湯之屋》

- 《筮法》、《別卦》、《算表》

- 《命訓》、《厚父》、《封許之命》、《湯處於湯丘》、《湯在啻門》、《殷高宗問於三壽》

- 《鄭武夫人規孺子》、《鄭文公問太伯》(甲、乙)、《子產》、《管仲》、《子儀》

- 《子犯子餘》、《晉文公入於晉》、《趙簡子》、《越公其事》

- 《攝命》《邦家之政》《邦家處位》《治邦之道》《心是謂中》《天下之道》《八氣五味五祀五行之屬》《虞夏殷周之治》

- 《治政之道》、《成人》、《廼命一》、《廼命二》、《禱辭》

- 《四告》、《四時》、《行稱之道》

 

4. 안대간(安大簡)

안대간은 2015년 안후이대학이 입수한 초나라 죽간이다. 안후이대학전국죽서(安徽大學藏戰國竹簡)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출판, 흔히 줄여서 안대간 혹은 안휘간이라고 부른다. 시경과 초나라 역사 관련 문헌이 주요한 내용이다.


1) 이승률, ≪죽간·목간·백서 중국 고대 간백자료의 세계1≫

 

모성재에서 월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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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청동기문자) 개요

금문(金文)은 청동기에 기록한 문자로 상나라 때부터 확인되지만 본격적인 사용은 주나라 때부터이다. 길금문(吉金文), 종정문(鍾鼎文), 청동기문자(靑銅器文字) 등으로도 불린다. 

 

利簋

이궤(利簋)는 주나라 극 초기의 기록이며 총 32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주나라 무왕의 상나라 정벌과 관련이 있다.

 

이궤(利簋)의 원래 모습 상상도 Copyright ⓒ 2021 by Worun (worungong@gmail.com) 

다른 청동기와 마찬가지로 이궤(利簋)도 녹이 슬기 전에는 황금색으로 빛났을 것이다. 

 


이궤(利簋) 탁본
이궤(利簋) 석문

1)隹(唯)2)甲子朝. 歲鼎(貞)3). 克聞. 夙又(有)4).

무왕께서 상나라를 정벌하신 것은 갑자일 아침이었다. 세성(목성)이 바르게 자리했고 승리가 들려왔다. (무왕께서) 신속히 상나라를 점령하셨다. 

辛未, 王才(在)𪧶(管)5)𠂤(師)6), 易(賜)又(右)事(史)7).

신미일에 왕께서 관(管) 지역에서 주둔하시며, 우사(右史)인 리(利)에게 동(銅)을 하사하셨다. 

用乍(作)𬀞(檀)公8)寶𱀵(尊)彝.

이로써 단공(檀公)의 보배로운 예기(禮器)를 만들었다. 


1) 珷: 무왕(武王)의 전용 글자. 武 혹은 武王이라고 읽는다.

2) 隹: 唯, 惟, 維 등으로 읽으며 의미는 같다. 연월을 나타내는 唯자 구조도 하나의 문장이다. 唯는 주요동사이다. 唯는 연월을 나타내기도 하고 날짜를 나타내기도 한다.  메이광(梅廣), ≪上古漢語語法綱要≫ 186쪽(번역서 ≪고대중국어 문법론≫ 203쪽) 주석 참고.

3) 歲鼎: ≪국어(國語)≫<주어(周語) 下> "昔武王伐殷, 歲在鶉火(옛날에 무왕께서 은나라를 정벌하실 때 세성이 순화 분야에 있었다)."라는 기록에 의거해  歲貞으로 읽는다. 순화(鶉火)는 주나라의 분야(分野: 천문가가 천하를 하늘의 이십팔수에 별러서 나눈 것)이다. 신동준, ≪국어≫, 141쪽 참고.

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2e0101&titleId=C38 

 

동양고전 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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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又: 有로 읽는다. 고대(대략 서한 시기까지)에는 又와 有 모두 '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有}라는 단어를 나타낼 수 있었다. 이때는 '유(yǒu)'라고 읽는다. 한편으로는 두 글자 모두 '또, 다시'라는 의미의 부사 {又]를 나타낼 수 있었다. '우(yòu)'라고 읽어야 한다.  추시구이(裘錫圭), ≪文字學槪要≫, 229쪽(번역서 434쪽) 참고.

5) 管: ≪일주서(逸周書)≫ <대광해(大匡解)>와 <문정해(文政解)>의 "惟十有三祀, 王在管(13년에 왕께서 관 지역에 계셨다 )."라는 기록에 의거해 管으로 읽는다. 柬, 間, 官은 견뉴(見紐)에 속하고 첩운(疊韻)이다. 

https://ctext.org/lost-book-of-zhou/zh?searchu=%E7%AE%A1 

 

逸周書 - 管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檢索範圍: 逸周書 檢索類型: 段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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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𠂤: 師로 읽는다. 추시구이(裘錫圭), 釋殷墟卜辭中與建築有關的兩個詞——“門塾”與“𠂤” 참고. 전래문헌의 용례에 의거해 '주둔하다'라는 의미의 次로 읽기도 한다. 

7) 金: 동(銅, bronze)을 의미한다.

8) 𬀞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1년> "昔周克商, 使諸侯撫封, 蘇忿生以溫爲司寇, 與檀伯達封于河(옛날에 주나라가 상나라에 승리했을 때 제후들에게 각기 봉지를 분여할 때 소분생을 온 지역의 사구로 삼았고 단백달과 함께 하내에 봉했다)."라는 기록에 의거해 檀公으로 읽는 견해가 있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낫다.  신동준, ≪춘추좌전上≫, 680쪽 참고. 

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1e0203&titleId=C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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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재에서 월운 씀

소극정(小克鼎) '극(克)' 글자가 있는 작은 세발솥.

[원문]

隹(唯)王廿(二十)又三年九月,王才(在)宗周。王命善(膳)夫舍令(命)1)成周
遹正八𠂤(師)之年,乍(作)朕皇且(祖)釐季寶宗彝。克其日用⿱⿲爿月刀鼎(肆)2)朕辟魯3)4)
用丐康𪟣(樂)5)、屯(純)右(祐)、亹(眉)壽、永令(命)、霝(靈)冬(終)。邁(萬)年無疆,
其子=孫=永寶用。

 

[한국어 독음]

유왕이십우삼년구월, 왕재종주, 왕명선부극사령우성주.

휼정팔사지년, 극작짐황조리계보종이. 극기일용사짐벽노휴,

용개강락순우미수영명영종. 만년무강, 극기자자손손영보용.

 

[중국어 독음]

Wéi wáng èr shí yòu sān nián jiǔ yuè,wáng zài Zōng Zhōu。Wáng mìng shàn fū Kè shè mìng yú Chéng Zhōu。

Yù zhèng bā shī zhī nián,Kè zuò zhèn huáng zǔ Lí Jì bǎo zōng yí。Kè qí rì yòng sì zhèn bì lǔ xiū,

yòng gài kāng lè、chún yòu、 méi shòu、yǒng mìng、 líng zhōng。 Wàn nián wú jiāng,

Kè qí zǐ zǐ sūn sūn yǒng bǎo yòng。

 

[해석]

주나라 효왕 23년 9월 왕께서 종주(옛 도성 주원)에 계셨다. 왕께서 선부(왕실 음식 책임자) 극(克)에게 명하시어 성주(새 도성 낙양)에 왕명을 전달하도록 하셨다. 이에 왕실의 8개 사단을 정비하던 해에 극은 위대하신 할아버지 리계(釐季)를 위한 보배로운 예기(禮器)를 만들었다. 극은 날마다 이로써 우리 임금의 너그러운 비호에 예를 표할 것이며 이로써 건강, 축복, 장수 등을 기원할 것이다. 만수무강하도록 극은 자손대대 오래도록 보배롭게 사용할 것이다.


1) 舍令: 전광진,  <소극정 (小克鼎) 명문 고석>(2000)에 인용된 천추성(陳初生)과 저우허(周何)의 설에 따라 '왕의 명령을 전달하다'로 정정한다.

https://digital.kyobobook.co.kr/digital/article/articleDetail.ink?barcode=4010023047386 

 

小克鼎 銘文 考釋

N

digital.kyobobook.co.kr

2) ⿱⿲爿月刀: 천젠(陳劍)의 설을 따라 肆(사)로 읽고 "진열하다"로 풀이한다. 문맥 상 예기를 진열함으로써 예를 표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http://www.fdgwz.org.cn/Web/Show/281

 

陳劍:甲骨金文舊釋“將/鼎”之字及相關諸字新釋(中)-复旦大学出土文献与古文字研究中心

 

www.fdgwz.org.cn

3) 魯: '아름답다.'

4) 休: '비호(庇護)'

5) 𪟣: 궈모뤄(郭沫若)의 설에 따라 樂으로 읽는 것이 현재로서는 그나마 나아 보인다.

https://www.shanghaimuseum.net/mu/frontend/pg/article/id/CI00000653

 

上海博物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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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hanghaimuseum.net

https://www.dpm.org.cn/collection/bronze/228228.html

 

小克鼎 - 故宫博物院

商周时期青铜器的一种,原为食器,用以烹煮或盛放肉食,后逐渐成为祭祀、征伐、丧葬等活动中陈设的一种礼器。同时,鼎也是贵族进行宴飨、祭祀等礼制活动时最重要的礼器之一,所谓“钟

www.dpm.org.cn

http://www.chinaknowledge.de/Literature/Terms/bronze_jinwen.html

 

jinwen 金文, bronze vessel inscriptions (www.chinaknowledge.de)

Nov 28, 2010 © Ulrich Theobald The so-called jinwen 金文 "bronze texts" are inscriptions on ritual bronze vessels from the Shang 商 (17th-11th cent. BCE) and Zhou 周 (11th cent.-221 BCE) period, but also on other objects of the Warring States 戰國 (

www.chinaknowledge.de


https://youtu.be/rXOpEQQYl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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