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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문헌(傳來文獻, transmitted texts)이란 예로부터 전하여 내료온 문헌이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예로 들면 원저작자, 즉 원래의 글쓴이가 있다. 전설대로 노자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춘추전국시대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종이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초의 ≪도덕경≫은 죽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 수많은 전달자들이 있었다. 하상공(河上公)이나 왕필(王弼)이 대표적이다(물론 원저작자와 그들 사이에도 수많은 전달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손에서 손으로, 베낀 것을 다시 베껴 후세로 전달되었으며, 그런 과정에서 종이의 사용이 일반화되자 종이책으로, 인쇄술이 발명되자 활자로, 심지어 컴퓨터 기술이 개발된 이후로는 전자책(E-book) 형태로 지금까지 내려왔다. 이런 것이 전래문헌이다. 현재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출토문헌(出土文獻, excavated texts)이란 무엇인가? 바로 고고학 발굴을 통해 땅에서 나온 문헌이다(안타깝게도 종종 도굴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기도 한다).
역시 ≪도덕경≫으로 예를 들어 보면, 중국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백서노자(帛書老子)가 대표적이다. 백서란 비단에 쓴 글을 말하는데 아직 종이가 사용되기 이전에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것은 최소 한나라 초기까지 연대가 올라가는 것으로 노자(혹은 원저작자인 누군가)가 쓴 ≪도덕경≫의 원본은 아니지만 비교적 원래 형태에 가까울 것이다. 특이할 만한 점은 통행본 ≪도덕경≫은 상편이 도경(道經)이고 하편이 덕경(德經)인데 백서본은 반대로 덕경이 먼저 오고 도경이 뒤에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서본을 ≪덕도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글자에 있어서 다소간 차이가 있다.
게다가 곽점촌(郭店村) 초묘(楚墓)에서는 죽간본이 출토되었는데 무려 300 BCE, 즉 전국시대 중후기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출토문헌을 참고함으로써 우리는 원본 내용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출토문헌은 땅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단단하고 잘 훼손되지 않는 재료가 많다. 왜냐하면 훼손되기 쉬운 재료에 기록된 문헌이라면 발견되기도 전에 벌써 사라져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거북의 배딱지[腹甲]이나 짐승의 뼈에 새긴 갑골 문자, 청동 기물의 명문으로 새겨진 청동기 문자, 죽간 및 목간, 백서(비단에 쓴 글) 등이 있다. 백서는 사실 종이가 일반화되기 이전에 종이의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비단에 기록하기 때문에 부식되기가 쉬워 내구성이 약한 편이다.
한반도에서도 출토문헌이 발견된 적이 있다. 경남 김해시 봉황동에서 출토된 목간논어, 인천 계양산성의 목간논어, 북한 평양 정백동에서 출토된 죽간논어가 대표적이다. 특히 평양의 죽간본은 연대가 무려 서한시대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이와 관련된 어떠한 공식적 발표도 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참고자료
김혁, ≪한자 그것이 알고 싶다≫
부산대학교박물관, ≪김해봉황동저습지유적≫ 부산대학교박물관연구총서33집
이승률, ≪죽간·목간·백서 중국 고대 간백자료의 세계1≫
荊門市博物館編, ≪郭店楚墓竹簡≫
國家文物局古文獻硏究室編, ≪馬王堆漢墓帛書[壹]≫
橋本繁(하시모토 시게루), 논어 목간의 원형 복원과 용도
이성시, 山田章人, 동아시아 삼국의 문자 교류와 논어
모성재에서 월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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