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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나 고대사상사 분야의 새로운 경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출토자료의 세기"가 될 것이다.1)

출토자료는 갑골 문자, 청동기 문자(금문), 백서(帛書), 죽간, 목간 등이 있다. 이번 게시글에서는 초나라 죽간, 줄여서 초간(楚簡)이라고 부르는 자료를 집중적으로 알아보겠다.

 

1. 곽점초간(郭店楚簡)

곽점초간은 1993년 중국 후난성(湖南省) 징먼시(荊門市) 궈뎬촌(郭店村, 곽점촌)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은 초나라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총 804매의 죽간이 함께 묻혀 있었다. 

 

내용:

- 老子甲、乙、丙

- 太一生水

- 緇衣

- 魯穆公問子思

- 窮達以時

- 五行

- 唐虞之道

- 忠信之道

- 成之聞之

- 尊德義

- 性自命出

- 六德

 

2. 상박초간(上博楚簡)


상박초간은 1994년 상하이박물관 관장 마청위안(馬承源)이 홍콩공동품경매시장에서 구매한 것이다. 경매시장에 등장했다는 것은 이전에 도굴되었음을 의미한다. 상하이박물관장전국초죽서(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출판, 흔히 줄여서 상박초간이라고 부른다. 총1,200여 매의 죽간이 확인되었다.

 

내용:

- 《孔子詩論》、《緇衣》、《性情論》

- 《民之父母》、《子羔》、《魯邦大旱》、《從政》、《昔者君老》、《容成氏》

- 《周易》、《恆先》、《仲弓》、《彭祖》

- 《採風曲目》、《逸詩》、《柬大王泊旱》、《昭王毀室》、《內豊》、《相邦之道》、《曹沫之陳》

- 《競建內之》、《鮑叔牙與隰朋之諫》、《季庚子問於孔子》、《姑成家父》、《君子為禮》、《弟子問》、《三德》、《鬼神之明·融師有成氏》

- 《競公瘧》、《孔子見季桓子》、《莊王既成·申公臣靈王》、《平王問鄭壽》、《平王與王子木》、《慎子曰恭儉》、《用曰》、《天子建州》(甲本)、《天子建州》(乙本)

- 《武王踐阼》、《鄭子家喪》、《君人者何必安哉》、《凡物流形》、《吳命》

- 《子道餓》、《顏淵問於孔子》、《成王既邦》、《命》、《王居》、《志書乃言》、《有皇將起》、《李頌》、《蘭賦》、《鶹鸝》
《成王為城濮之行(甲、乙本)》、《靈王遂申》、《陳公治兵》、《舉治王天下(五篇)》、《邦人不稱》、《史蒥問於夫子》、《卜書》

 

3. 청화간(淸華簡)

청화간은 2008년 칭화대학 졸업생 자오웨이궈(趙偉國)가 해외 경매로 구매한 것이다. 도굴 후 해외로 유입된 것이 경매시장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칭화대학장전국죽서(淸華大學藏戰國竹書)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출판, 흔히 줄여서 청화간이라고 부른다. 총 2,388매의 죽간이 확인되었다.

 

내용:

- 《尹至》、《尹誥》、《程寤》、《保訓》、《耆夜》、《金縢》、《皇門》、《祭公》、《楚居》

- 《繫年》

- 《傅說之命》、《周公之琴舞》、《芮良夫毖》、《良臣》、《祝辭》、《赤鵠之集湯之屋》

- 《筮法》、《別卦》、《算表》

- 《命訓》、《厚父》、《封許之命》、《湯處於湯丘》、《湯在啻門》、《殷高宗問於三壽》

- 《鄭武夫人規孺子》、《鄭文公問太伯》(甲、乙)、《子產》、《管仲》、《子儀》

- 《子犯子餘》、《晉文公入於晉》、《趙簡子》、《越公其事》

- 《攝命》《邦家之政》《邦家處位》《治邦之道》《心是謂中》《天下之道》《八氣五味五祀五行之屬》《虞夏殷周之治》

- 《治政之道》、《成人》、《廼命一》、《廼命二》、《禱辭》

- 《四告》、《四時》、《行稱之道》

 

4. 안대간(安大簡)

안대간은 2015년 안후이대학이 입수한 초나라 죽간이다. 안후이대학전국죽서(安徽大學藏戰國竹簡)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출판, 흔히 줄여서 안대간 혹은 안휘간이라고 부른다. 시경과 초나라 역사 관련 문헌이 주요한 내용이다.


1) 이승률, ≪죽간·목간·백서 중국 고대 간백자료의 세계1≫

 

모성재에서 월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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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心不亂.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아 백성들을 다투게 만들지 않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 백성들이 도둑질하게 만들지 않고, 욕심 낼 만한 것을 보지 않아서 마음이 어지러워지게 만들지 않는다.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強其骨.

이 때문에 성인(통치자)의 다스림은 그 (백성의) 마음을 비우고 그  (백성의) 배를 채우며, 그  (백성의) 의지를 약하게 하고 그  (백성의) 뼈대를 강하게 한다.

常使民無知無欲. 使夫知1)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항상 백성들이 욕망도 없고 지혜도 없도록 하고, 저 지혜로운 자가 감히 억지로 행하지 못하게 한다.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을 행하면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가 없다.


1) 知: 흔히 '지혜롭다'로 풀이한다.  智 참고.

백서본 "恒使民無知·無欲也, 使夫知不敢·弗爲而已, 則無不治矣."

주첸즈(朱謙之)는 ≪老子校釋≫에서 不敢과 弗爲를 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6, 17쪽 참고.

"今案「不敢」、乃二事,與前文無知無欲相對而言,斷句。文三十章以取强,各本下有字,字衍文。但六十七章不敢爲天下先,六十九章不敢爲主而爲客不敢進寸而退尺,七十三章勇於不敢則活,以不敢不爲對,知文有誤脫。老子原意謂常使一般人民無知無欲,常使少數知者不敢不爲,如是則清静自化,而无不治。

又案不敢不爲,卽不治治之。論衡自然篇曰:蘧伯玉子貢使人問之:『何以治對曰:治治之。治之治,無爲之道也。誼卽本此。蓋老子之意,以爲太上無治。世之所謂治者,尚賢則民争;貴難得之貨,則民爲盜;見可欲則心亂。今一反之,使民不見可尚之人,可貴之貨,可欲之事。如是,則混混沌沌,反朴守醇,常使民無知無欲,則自然泊然,不盜不亂,此所以知者不敢不爲。至德之世,上如標枝,民如野鹿;含哺而熙,鼓腹而遊。此則太古无爲而民自化,翱翔自然而無物治者也。"


참고자료

이석명, ≪도덕경≫

임채우, ≪왕필의 노자주≫

임헌규, ≪노자≫

高明, ≪帛書老子校注

國家文物局古文獻硏究室編, ≪馬王堆漢墓帛書[]≫

樓宇烈, ≪老子道德經注校釋

裘錫圭, ≪老子今硏

朱謙之, 老子校釋

池田知久(이케다 도모히사), ≪老子全譯注


https://www.youtube.com/watch?v=CwbE8tbEf9Q 

모성재에서 월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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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皆知美之1)爲美, 斯惡已.

皆知善之1)爲善, 斯不善已.

천하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는 추악할 뿐이고, 모두 선함이 선한 줄 알지만 이는 선하지 못할 뿐이다.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2), 高下相傾3)

音聲相和, 前4)後相隨.

그러므로 있고 없음이 서로를 낳고, 쉽고 어려움이 서로를 이루고, 길고 짧음이 서로 비교되고, 높고 낮음이 서로 바뀌고, 소리와 성률이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가 서로 따른다.

是以聖人,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이 때문에 성인(통치자)은 억지로 하지 않는 일에 마음을 두며,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한다. 

萬物, 作焉而不辭5), 生而不有, 爲而不恃6), 功成而弗居.

만물은 거기서 일어나되 (성인은) 말하지(혹은 다스리지) 않으며, (만물은) 생겨나되 (성인은) 소유하지 않으며, (만물은) 활동하되 (성인은) 의지하지 않으며, (만물의) 공적이 이루어지되 (성인은 지위에) 머물지 않는다.

夫唯弗居, 是以不去.

이는 (지위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 이 때문에 (지위를) 떠나지도 않는다.


1) 之: 주어 之 술어 구조. 독립된 문장을 종속된 절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단순한 ‘주어+ 술어’는 “주어가 술어하다.”로 풀이한다. 반면 ‘주어之술어’는 “주어가 술어하는 것” 혹은 “주어가 술어할 때/하면”으로 풀이한다. 

2) 較: 비교되다. 백서본에서는 刑으로, 죽간본에서는 型으로 썼다.

3) 傾: 기울어지다. 백서본에서는 盈으로, 죽간본에서는 浧으로 썼다. 

4) 前: 백서본과 죽간본에서는 先으로 썼다.

 

곽점(郭店) 초묘(楚墓) 출토 죽간노자(竹簡老子) 

2021 ⓒ 월운(worungong@gmail.com)

又(有)亡之相生也, (難)惖(易)之相城(成)也,

(短)之相型(形)也, 高下之相浧也,

音聖(聖)之相(和)也, 先𨒥(後)之相墮(隨)也.

 

5) 辭: 죽간본의 글자는 辭, 治, 始 등으로 읽을 수 있다.

6) 恃 (시): ≪설문해자(說文解字)≫의 "恃, 賴也."라는 설명에 근거해 '의지하다'로 풀이한다. 죽간본에서는 志로 써서 '뜻을 두다'로 풀이된다. 


참고자료

조은정, ≪죽간에 반영된 노자의 언어≫

이석명, ≪도덕경≫

임채우, ≪왕필의 노자주≫

임헌규, ≪노자≫

高明, ≪帛書老子校注

樓宇烈, ≪老子道德經注校釋

裘錫圭, ≪老子今硏

荊門市博物館編, ≪郭店楚墓竹簡

池田知久(이케다 도모히사), ≪老子全譯注


이승률, 곽점초간(郭店楚簡) 『노자(老子)』의 ‘자연(自然)’ 사상(思想)과 그 전개(展開)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225018


https://www.youtube.com/watch?v=CwbE8tbEf9Q 

모성재에서 월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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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可道2), 非常3)道; 名可名4), 非常3)名.

‘도(, 길)’란 것은 말할 수 있다면 늘 한결 같은 도가 아니다. ‘이름’이란 것은 부를 수 있다면 늘 한결 같은 이름이 아니다.

無名天地5)之始, 有名萬物之母.

‘이름이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의 처음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모든 것의 어미이다.

故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6).

그러므로 ‘늘 욕망이 없는 것’으로 그 미묘함을 바라보고, ‘늘 욕망이 있는 것’으로 그 돌아감을 바라본다.

此兩者, 同出而異名,同謂之7)玄. 玄之8)又玄, 衆妙之9)門.

이 두 가지는 같이 나와 다른 이름이 되니 같이 ‘현(, 가물가물)’이라고 부른다. 현묘하고도 현묘하니 모든 현묘함의 문이다.


1) 노자의 도. 우주의 원리. 

2)  말하다.

3) 역대로 이설이 많다. '영원불멸, 영구불변, 항상, 항구, 늘 그러하다, 한결 같다, 일정하다, 평범하다' 등등.

4) 부르다.  참고.

5) 백서본에는 '萬物'로 되어 있다. 아래의 백서본 참고.

6) (요) 돌다. 역대로 이설이 많다.

—(1) [위()나라] 왕필(王弼):  '돌아가서 마침(歸終)'

—(2) [당나라]  육덕명(陸德明): (古弔反: 교, jiào) '작은 길(小道), 갓길邊道), 미묘함(微妙 )'

—(3) 밝음. (교, jiǎo) 참고.

—(4) [송나라] 임희일(林希逸): 구멍. (규, qiào) 참고.

장시창(蔣錫昌)은 요행(徼倖, 행운을 바라다)의 (요, jiǎo)로 읽고 '구()하다'로 풀이하였는데 가장 좋은 해석이다. 이렇게 되면 '有欲'과 서로 호응하여 "(유욕의 관점으로) 그것(만물)이 구하는 것을 바라본다"로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老子校詁≫ 8-9쪽 참고.

7) [대명사] 그것. '此兩者'를 가리킨다.

8) 흔히 사용되는  자의 접속 용법과 유사하다.  페이쉐하이(裵學海), ≪古書虛字集釋≫ 725쪽 참고.

9)  (수식구조) ~의, ~한.


[위(魏)나라] 왕필(王弼) 주: 가장 권위 있는 ≪도덕경≫ 주석

可道之道, 可名之名, 指事造形, 非其常也. 故不可道, 不可名也. 1)

말할 수 있는 '도'와 부를 수 있는 '이름'은 개념을 가리키고 형체를 만드니 항상된(늘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凡有皆始於無, 故未形無名之時則爲萬物之始, 及其有形有名之時, 則長之育之, 亭之毒之, 爲其母也. 言道以無形無名始成萬物, 以始以成而不知其所以, 玄之又玄也.

무릇 '유(有)'는 모두 '무(無)'에서 시작하므로, 아직 드러나지 않고 이름이 없는 때가 모든 것의 시작이다. 형체가 드러나고 이름이 생기는 때가 되면 자라게 해주고 길러주고 드러내주고 이루어주니 그 어미가 된다. (이 절은) '도'가 형체가 없고 이름이 없는 상태로 모든 것을 시작시키고 이루어주면, (모든 것은) 그것에 의해 시작되고 이루어지되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니 현묘하고도 현묘하다는 것을 말한다.  

妙者, 微之極也. 萬物始於微而後成, 始於無而後生. 故常無欲空虛, 可以觀其始物之妙.

'묘(妙)'란 미세함의 극치이다. 모든 것은 미묘한 데서 비롯한 뒤에 이루어지며 '무'에서 시작한 뒤에 생겨난다. 그러므로 항상 욕망이 없고 공허한 관점으로 그 사물이 시작되는 미묘함을 바라본다. 

徼, 歸終也. 凡有之爲利, 必以無爲用. 欲之所本, 適道而後濟. 故常有欲, 可以觀其終物之徼也.

요는 돌아가서 마치는 것이다. 무릇 '유'가 이로운 것은 반드시 무를 작용으로 삼아서이다. 욕망이 뿌리내리는 곳은 도에 도달해서야 풀린다. 그러므로 항상 욕망이 있는 관점으로 모든 것이 끝나서 돌아가 마침을 바라보는 것이다.

兩者, 始與母也. 同出者, 同出於玄也. 異名, 所施不可同也. 在首則謂之始, 在終則謂之母. 玄者, 冥也, 默然無有也. 始, 母之所出也. 不可得而名, 故不可言同名曰玄, 而言謂之玄者, 取於不可得而謂之然也. [不可得]2)謂之然則不可以定乎一玄而已, 則是名則失之遠矣. 故曰 "玄之又玄也." 衆妙皆從同而出,故曰 "衆妙之門也."

두 가지란 '시()'와 '모()'이다. 같이 나왔다는 것은 현묘한 데서 같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름이 다르다는 것은 적용되는 곳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첫머리에서는 '시'라고 이르고 끝에서는 '모'라고 한다. '현()'이란 어두워서 고요하게 빈 것이다. '시'는 '모'가 나오는 곳이다. 이름 붙일 수 없으므로 같이 '현'이라고 이름하여 말할 수 없으나, (같이) '현'이라고 한다고 말한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하다고 말를 수 없으므로 동일한 '현'이라고 단정할 수만도 없다. (동일하다고 단정한다면) 그 이름은 잘못이 심각하다. 그래서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라고 하였다. 모든 현묘함이 모두 '현'으로부터 나오므로 "모든 신묘함의 현묘함의 문이다"라고 하였다.


1) 이것이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노자≫ 1장 첫째 줄의 해석이다. 

2) 樓宇烈, ≪老子道德經注校釋≫ 5쪽을 참고하여 보충하였다.


≪한비자(韓非子)<해로(解老)>편: 최초의 ≪도덕경≫ 해설

凡理者, 方圓·短長·麤靡·堅脆之分1)也. 故理定而後可得道也. 故定理有存亡, 有死生, 有盛衰. 夫物之一存一亡, 乍死乍生, 初盛而後衰者, 不可謂常. 唯夫與天地之剖判也具生, 至天地之消散也不死不衰者謂常. 而常者, 無攸易, 無定理, 無定理非在於常所, 是以不可道也. 聖人觀其玄虛, 用其周行, 強字之曰道2), 然而可論3), 故曰: “道之可道, 非常道也.”
무릇 ‘이()’란 모나고 둥근 것과 짧고 긴 것과 거칠고 가는 것과 단단하고 부드러운 것의 구분이다. 그러므로 ‘이’가 일정해진 이후에 ‘도()’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일정해진 ‘이’에는 존재와 소멸이 있고 죽음과 삶이 있으며 성함과 쇠함이 있다. 사물이 한번 있었다가 한번 없어지고 문득 죽었다가 문득 살아나며 처음에는 성하다가 뒤에는 쇠해는 것은 한결 같다고 할 수 없다. 오직 하늘과 땅이 갈라져서 열릴 때에 함께 태어나고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흩어질 때까지도 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을 한결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결 같은 것이란 바뀌는 데가 없고 정해진 ‘이’가 없다. 정해진 ‘이’가 없는 것은 보통의 장소에 있지 않으니 이 때문에 말할 수 없다.  성인(노자를 가리킴)이 그 현묘한 허무를 바라보고 그 두루 운행하는 점으로써 억지로 이름을 지어 ‘도(, 길)’라고 말하였으니 그런 뒤에 논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가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상도가 아닌 것이다”라고 한다. 


※ ≪한비자(韓非子)≫에는 ≪노자≫가 덕경, 도경 순서로 인용되어 있는데 이것은 백서본의 차례와 일치한다. 이는 전국시대에는 도경, 덕경 순서가 아니라 덕경, 도경 순서가 일반적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기서의 해설은 현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석과 일치하는 듯하다.

1) 理를 分으로 정의한 것은  <해로(解老)>편의 특색이다. 이운구, ≪한비자Ⅰ≫ 311쪽 참고.

2) ≪노자≫ 25장 인용. '可論'을 곧 '可道(말할 수 있다)'로 보는 설이 있다. 이에 따르면 뒷 문장의 "道之可道'는 '道之所以可道(도가 말해질 수 있는 이유는)'가 되며 '非在於常所'를 '非常道也'와 연결시킨다. 또 '不可謂上', '謂常', '而常者'의 ()의 ''과 구별되며 피휘로 고쳐진 것이 아닌 원래부터 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본다. 이 해석은  ≪한비자≫에 인용된 ≪노자≫도 백서본처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래의 백서본 참고. 裘錫圭, ≪老子今硏≫ 102-104쪽 참고.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출토 백서노자(帛書老子) 갑본(甲本)

2021 ⓒ 월운(worungong@gmail.com)

可道1), 非恒2); 名可名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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无(無)3)名萬物4)之始也5), 有名萬物之母也.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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恒無欲也6), 以觀其眇(妙)7); 有欲6), 以觀其所噭(徼)8).

 

2021 ⓒ 월운(worungong@gmail.com)

兩者同出, 異名同胃(謂),9) 玄之有(又)10)玄, 衆眇(妙)之[門]11).


※ 왕필본을 비롯한 통행본 ≪노자≫가 도경, 덕경 순서로 되어 있는데 반해, 백서본은 덕경, 도경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고대에도 도경이 앞에 있는 판본이 있었으나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1) '可道'와 '可名' 뒤에 가 들어감으로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해석("도를 말할 수 있으면 항상된 도가 아니고,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면 항상된 이름이 아니다.")은 언어학적으로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당시 중국어의 문법상 불가능한 풀이가 된다. 추시구이(裘錫圭)는 백서본을 "도(노자의 도)는 말할 수 있으나, 통상적인 도가 아니다. 이름(도의 이름)은 부를 수 있으나 통상적인 이름이 아니다."라고 해석한다. ≪老子今硏≫ 98-101쪽.

2) 한나라 문제(文帝) 유항(劉恒)을 피휘(避諱)하여 의미가 거의 같은 常으로 후대에 바뀐 것이다. 피휘란 군주, 조상, 성인(聖人)의 이름은 사용하지 않는 행위나 그런 관습이다. 물론 모든 이 원래 이었는데 피휘로 인해 바뀌었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원래부터 으로 쓰던 도 있었을 것이다.

3) 《설문해자(說文解字)》: “, 亡也, 从亡無聲. , 奇字无, 通於元者, 王育: '天屈西北爲无.’”

4) 통행본에는 '天地'로 되어 있다. 아마 '萬物之始'와 '萬物之母'가 같은 뜻이라고 생각해 후대에 고친 듯하다. 또 '萬物'을 '天地'로 바꿈으로써 앞의 것은 보다 추상적인 개념, 뒤의 것은 보다 구체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추시구이는 始를 '구체적인 사물이 없고, 이름도 없고, 도만 있는 단계'로 해석한다. 아울러 다음 문장의 는 '도가 일()을 낳고, 일이 이()와 삼()을 거쳐서 만물을 낳은 단계'로 해석한다. ≪老子今硏≫ 112-101쪽.

5) 也가 들어감으로써 바로 뒤에서 구절을 끊는 것보다 '無名'과 '有名' 뒤에서 끊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진다.

6) 也가 들어감으로써 와  바로 뒤에서 구절을 끊는 것보다 '無名'과 '有名' 뒤에서 끊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진다.

7) 《설문해자》에는 를 따르는 가 없다. 선진(先秦) 시기의 옛 책에서는 을 따르는 를 사용해 {}라는 단어를 나타내었다. ≪老子今硏≫ 115쪽.

8) 통행본에는 가 없고 로 되어 있다. 추시구이는 장시창의 해석을 따라 徼倖로 읽고 '구()하다'로 풀이한다. '其所徼'는 '만물이 구하는 바'가 된다. ≪老子今硏≫ 115-116쪽.

9) '말하다'라는 의미의 {}는 본래 자를 빌려 나타내었고 이후에 을 붙여서 를 만들어냈다. 裘錫圭, ≪文字學槪要≫ 176-177쪽(번역서 330쪽) 참고. 통행본에서는 앞의 문장에 가 덧붙여져 있으며 '兩者'와 '異名' 뒤에서 각각 구절을 끊어 "此兩者, 同出而異名"이 되었다. 남겨진 '同謂'는 그 자체로는 의미 이해가 되지 않으므로 후대에 '之玄'을 추가했을 것이다. 추시구이는 '兩者'를 '無名有名'으로 보았으며 '同出'은 '같이 도의 본체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해석했다. 또 '異名同胃()'는 ≪장자(莊子)≫<지북유(知北遊)>의 '異名同實'처럼 '언어는 다르지만 표현하는 의미는 같은 것'으로 풀이했다. ≪老子今硏≫ 119-123쪽.  는 모두 상고음의 物部에 속하므로 이렇게 구절을 끊어야 압운이 된다.

10) 고대(대략 서한 시기까지)에는 모두 '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는 단어를 나타낼 수 있었다. 이때는 '유(yǒu)'라고 읽는다. 한편으로는 두 글자 모두 '또, 다시'라는 의미의 부사 {]를 나타낼 수 있었다. '우(yòu)'라고 읽어야 한다. ≪文字學槪要≫ 229쪽(번역서 434쪽) 참고.

11) 마왕퇴 백서노자 을본(乙本)을 통해 보충하였다. 아래 이미지는 "又玄, 衆眇之門."에 해당한다.


참고자료

이석명, ≪도덕경≫

이운구, ≪한비자Ⅰ≫

임채우, ≪왕필의 노자주≫

임헌규, ≪노자≫

高明, ≪帛書老子校注

國家文物局古文獻硏究室編, ≪馬王堆漢墓帛書[]≫

蔣錫昌, ≪老子校詁

樓宇烈, ≪老子道德經注校釋

裵學海, ≪古書虛字集釋

裘錫圭, ≪老子今硏

——, ≪文字學槪要

荊門市博物館編, ≪郭店楚墓竹簡

池田知久(이케다 도모히사), ≪老子全譯注

W. K. Liao 英譯, 張覺 今譯, "Library of Chinese Classics: Han Fei Zi"


김형석, 남송(南宋) 임희일(林希逸)의 신유학적 노장해석에 관한 연구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79416690 


https://ctext.org/excavated-texts/zh

http://118.24.95.172/oc/oldage.aspx


https://youtu.be/789kMfBskBA

모성재에서 월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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