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평안하게 만드는 것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있다고 말한 것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하면 백성들이 효도에 흥기되고,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하면 백성들이 공경에 흥기되고, 윗사람이 고아를 불쌍히 여겨 구제해주면 백성들이 등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헤아리는 도리(혈구지도)가 있다.
윗사람에게 싫었던 점을 가지고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 싫었던 점을 가지고서 윗사람을 섬기지 말고, 앞사람에게 싫었던 점을 가지고서 뒷사람에게 앞장서지 말고, 뒷사람에게 싫었던 점을 가지고서 앞사람을 따르지 말고, 오른쪽 사람에게 싫었던 점을 가지고서 왼쪽 사람과 사귀지 말고, 왼쪽 사람에게 싫었던 점을 가지고서 오른쪽 사람과 사귀지 말라. 이것을 헤아리는 도리(혈구지도)라고 말한다.
詩云: “樂只6)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7)之, 民之所惡惡5)之, 此之謂民之父母.
시에 말하길 “즐거우신 군자님은 백성들의 부모라네”라고 하니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것을 백성의 부모라고 말한다.
이 까닭으로 군자는 먼저 덕을 신중히 한다. 덕이 생기면 이에 사람이 생기고, 사람이 생기면 이에 토지가 생기고, 토지가 생기면 이에 재물이 생기고, 재물이 생기면 이에 쓸데가 생긴다. 덕이란 근본이요 재물이란 말단이니 근본을 밖으로 하고 말단을 안으로 하면 백성들을 다투게 하며 약탈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까닭으로 재물이 (군주에게) 모이면 백성들은 분산되고, 재물이 (백성들에게) 분산되면 백성들은 모이는 것이다. 이 까닭으로 말이 (이치에) 어긋나게 나간 것은 다시 어긋나게 들어오고, 재물이 어긋나게 들어온 것은 다시 어긋나게 나간다.
<康誥>曰: “惟命不于常.” 道18)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상서≫<강고>편에 말하길 “천명은 일정한 데 있지 않다”라고 하니 선하면 얻고 선하지 못하면 잃어버림을 말한다.
<楚書>曰: “楚國無以爲20)寶, 惟善以爲寶.”
≪국어≫<초어>에 말하길 “초나라는 보물로 여기는 것이 없고, 오직 선을 보물로 여긴다”라고 하며
舅犯曰: “亡人無以爲20)寶, 仁親以爲寶.”
외삼촌 자범이 말하길 “망명자는 보물로 여기는 것이 없고,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보물로 여긴다”라고 하였다.
≪상서≫<진서>편에 말하길 “천명은 일정한 데 있지 않다”라고 하니 선하면 얻고 선하편에서 말하였다. “가령 어떤 신하 한 명이 뚝심 있고 다른 기예는 없으나 마음이 아름답고 용납하는 아량이 있는 듯하다고 치자. (그 신하는) 다른 사람이 가진 기예를 마치 자기가 가진 것처럼 여기며, 다른 사람이 아름답고 총명한 것을 그가 진심으로 좋아하며, 입으로 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면(실천도 한다면) 정말로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 자손과 백성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로움이 생기도록 일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진 기예를 시기질투하여서 싫어하며, 다른 사람이 아름답고 총명한 것을 꺾어버리고 통하지 못하게끔 만들면 정말로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 자손과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할 것며 또한 위태롭다고 한다.”
오직 인(仁)한 사람이라야 그를 추방하고 유배하여 여러 이민족들의 땅으로 내쫓아 함께 중원에서 지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오직 인(仁)한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명한 이를 보더라도 등용하지 못하며, 등용하더라도 (자기보다) 앞자리에 두지 못하는 것은 게으름이다. 선하지 못한 이를 보고도 물리치지 못하며, 물리치더라도 멀리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이것을 사람의 본성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하니 재앙이 반드시 그 몸에 도달할 것이다.
이 까닭으로 군자는 큰 도가 있으니 반드시 진실과 신뢰로 얻게 되며 교만과 방자로 잃어버린다.
재물을 생산하는 것에 큰 도가 있으니 생산하는 자는 많고 먹는 자는 적으며, 만드는 것은 빠르고 쓰는 것은 느리면 재물이 항상 충분할 것이다.
인(仁)한 자는 재물을 써서 자기 몸을 일으키고 인(仁)하지 못한 자는 자기 몸을 써서 재물을 일으킨다.
윗사람이 인(仁)한 것을 좋아하는데 아랫사람이 의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는 있지 않았고, (아랫사람이) 의로운 것을 좋아하는데 그 (윗사람의) 일이 마무리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 않았고, (아랫사람이 의로운 것을 좋아하는데) 창고의 재물이 그 (윗사람의) 재물이 아닌 경우는 있지 않았다.
맹헌자가 말하였다. “말 네 마리를 기르는 이는 닭과 돼지를 살피지 않고, 얼음을 베는 집안은 소와 양을 기르지 않고, 전차 100대를 가진 집안은 백성의 세금을 긁어 모으는 신하를 기르지 않으니 세금을 긁어 모으는 신하가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가 있는 게 낫다.” 이것을 나라는 이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의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나라와 집안에서 우두머리가 되어 재화에 힘쓰는 자는 반드시 소인 때문이다. 저 소인을 시켜 나라와 집안을 다스리게 하면 재해가 아울러 닥칠 것이니 비록 선한 자가 있더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나라는 이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의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1) 앞의 老는 서술어, 뒤의 老는 목적어이다. '노인을 노인으로 잘 대우하다'로 풀이한다.
2) (zhǎng) 앞의 長은 서술어, 뒤의 長은 목적어이다. '어른을 어른으로 잘 대우하다'로 풀이한다.
3) 등지다, 등돌리다. 背 참고.
4) 주희(朱熹)는 絜은 '헤아리다'라는 동사로, 矩는 '법도'라는 명사로 보아 '법도로 헤아리다'라고 풀이했으나 이는 고전중국어의 통사구조 상 어색한 부분이 있다. 絜은 본래 繩(승)과 유사한 끈이나 줄로 된 측정도구이고, 矩는 직각자이다. 거기서 '재어보다, 헤아리다'라는 의미가 나오며, 絜矩를 모두 '헤아리다'라는 동사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단어 자체가 '기준(standard)'을 함의하고 있으므로 굳이 矩만 '법도'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梅廣, 《大學》古本新訂 참고.
5) (오, wù) 싫어하다, 미워하다.
6)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허사(虛詞).
7) (hào) 좋아하다.
8) 높은 모양.
9) 쌓여있는 모양.
10) 빛나는 모양, 성대한 모양.
11) 시경(詩經) 시대의 중국어는 爾(이)와 같은 대명사 목적어가 서술어 앞으로 도치되는 현상이 흔했다.
12) 편벽되다, 치우치다. 僻 참고.
13) 師: '무리, 사람들'. 고문헌에서 師는 '군사, 군대'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며 이 '무리, 사람들'이라는 의미와 연관이 있다.
14) 능하다, 잘하다.
15) 마땅히 ~해야 한다. 宜 참고.
16) 峻 (준) 크다.
17) (이) 쉽다. 여기서는 천명(天命)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18) 말하다.
19) 이에, 곧.
20) A以爲B: A를 B로 삼다, 여기다. 無以는 *無所以와 같은 의미이며 '어떤 수단도 없다'라는 의미이다. 無以爲寶는 "어떤 것으로도 보물을 삼을 것이 없다"로 풀이한다. 정해두고 보배라고 여기는 물질적인 재산이 없다는 의미이다.
21) 개(사물), 명(사람). 個 참고.
22) 오직 한 가지에만 성실한 모양.
23) 성대하고 너그러운 모양.
24) 彥 (언) 아름답다. 聖 총명(聰明)하다.
25) 啻 (시) ~일 뿐이다. 不과 호응하여 '~일 뿐만 아니라'로 풀이한다.
26) ~로부터. 입에서 말을 꺼내는 것처럼 할 뿐만이 아니라 실천까지 한다는 의미이다.
27) 寔 (식) 진실로, 정말로.
28) 黎 (려) 검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머리카락이 검은색이므로, 일반 백성들을 말한다.
29) 주로 하다. 主.
30) 媢 (모) 시기하다, 시샘하다. 疾 질투하다.
31) 거스르다, 꺾어버리다.
32) 하여금, 시켜서. 使之.
33) 放 추방(追放)하다. 流 유배(流配) 보내다.
34) 迸 (병) 쫓아내다.
35) 之於의 축약. 이때 之는 대명사 '그, 그것'으로 추방해야 할 사람을 가리킨다.
36) 國의 의미는 域과 유사하다. 중앙의 지역, 즉 중원(中原)으로 풀이한다.
37)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두다.
38) 命으로 읽으면 의미가 통하지 않으므로 정현(鄭玄)의 주석에 의거해 慢(만)으로 읽는다. 命과 慢 두 글자는 상고시대에 발음이 유사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언어학자 윌리엄 백스터William Baxter)와 로랑 사가르(Laurent Sagart)는 각각 /*m-riŋ-s/와 /*mˤra[n]-s/로 상고음을 재구했다."Old Chinese: A New Reconstruction" 참고. 정자(程子)는 怠로 읽었고 의미 자체는 통하나 음운론적으로는 옳지 않다.
39) 물러나게 하다, 물리치다.
40) (yuàn) 멀리하다.
41) 거스르다, 거역하다.
42) 재난. 災 참고.
43) 逮 (체). 도달하다.
44) 그, 저.
45) 泰 방자하다, 마음대로 하다.
46) 많다.
47) 빠르다.
48) 느리다.
49) (휵) 기르다.
50) 전차 한 대를 끌 수 있는 수의 말. 4마리.
51) 차라리. 與其A寧B: A하기 보다는 차라리 B하는 게 낫다.
52) 以A爲B: A를 B로 삼다, 여기다.
53) (zhǎng) 우두머리가 되다.
54) ~로부터 유래하다, ~ 때문이다.
55) A之胃B(A, 그것을 B라고 말한다)의 之와 같은 용법이다. 小人이 使의 목적어이다.
56) 주희(朱熹)는 彼爲善之 앞뒤에 빠진 글자나 잘못된 글자가 있다는 '궐문오자설(闕文誤字說)'을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저 소인을 시켜서 나라를 다스리면 재해가 아울러 닥칠 것이니 비록 선한 자가 있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로 이해된다.
한나라 정현(鄭玄)은 彼爲善之 뒤에서 구절을 끊고 彼를 군주로, 善을 서술어로 보았다. "저 군주가 장차 정치를 잘하고자 하더라도 소인을 시켜서 나라를 다스리면 비록 선한 점이 있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로 이해된다.
근래에 중국의 언어학자 메이광(梅廣)은 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의 단구는 아래와 같다.
彼爲善之小人之使, 爲國家菑害並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메이광은 爲善을 '선을 행하는 이들'이라는 명사로 보았다. 바로 뒤의 之는 '주어之술어' 구조에서 독립된 문장을 종속된 절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爲는 거성(去聲) wèi로 읽고 '때문에'라고 풀이했다. "저 선을 행하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소인을 등용하는 것은 나라와 집안에 재해가 아울러 닥쳐서 비록 선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이해된다. 역시 하나의 해석 방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 梅廣, 《大學》古本新訂, ≪上古漢語語法綱要≫ 20쪽(번역서 ≪고대중국어 문법론≫ 21쪽) 참고.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먼저 그 집안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자기 집안은 교화시키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교화시킬 수 있는 자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서지 않고도 나라에 교화를 이룩한다. 효도는 군주를 섬기는 수단이고, 공경은 어른을 섬기는 수단이고, 자애는 사람들을 부리는 수단이다.
<康誥>曰: “如保3)赤子.” 心誠4)求之, 雖不中5)不遠矣.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상서≫<강고>편에 말하길 “갓난 아이를 업어주는 듯이 한다”라고 하였으니 성심으로 그것을 구하면 비록 딱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멀지도 않을 것이다. 애 키우는 법을 다 배운 뒤에 시집 가는 자는 있지 않았다.
한 집안 전체가 인(仁)하면 한 나라 전체가 인에 흥기되고, 한 집안 전체가 겸양하면 한 나라 전체가 겸양에 흥기되며, 한 사람이 이익을 탐하면 한 나라 전체가 난을 일으키니, 그 기미가 이와 같다. 이것을 한 마디 말이 일을 그르치며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고 말한다.
≪위서≫에서 말하였다.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왕검이 있었다. 그는 수도를 아사달에 경에서는 '무엽산이라'고 하고, 또한 '백악이니 백주의 땅에 있다'고 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 하니 지금의 백악궁이 이것이다. 정하고 나라를 열었다. 이름은 조선이었고 요임금과 같은 시대였다."
≪고기≫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환인이 제석을 말한다. 있었다.서자인 환웅은 자주 하늘 아래를 생각하며 인간 세계를 갈망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생각을 알아채고는 삼위태백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할 수 있었다. 이에 천부인 3개를 주고 그를 보내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000을 이끌고태백산 꼭대기 즉 태백이니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성한 나무 아래로 내려가 그곳을 신의 도시라고 불렀다.이분을 환웅천왕이라고 부른다. 그는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농사를 주관하고, 목숨을 주관하고, 질병을 주관하고, 형벌을 주관하고, 선악을 주관하고, 무릇 인간 세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에 머물면서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그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동굴을 같이 쓰며 살고 있었는데 항상 환웅 신께 기도하며 바뀌어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때 신께서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주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햇빛을 보지 않은 지 100일이 지나면 곧 사람의 형상을 얻을 것이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 먹었고 근신한지 21일이 되자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다. 호랑이는 근신하지 못해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곰 여인은 함께 혼인할 이가 없어서 매번 신성한 나무 아래에서 임신하기를 기원했다. 환웅이 이에 잠시 바뀌어 혼인하였다. 그녀는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다. 이름은 단군왕검이었고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이 되는 경인년에 요임금이 즉위한 원년은 무진년이니 그렇다면 50년은 정사년이며 경인년이 아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의심된다. 평양성에 지금의 서경이다. 수도를 정하였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일컬었다. 다시 수도를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는데궁 어떤 곳에서는 방이라고 쓴다. 홀산이라고도 부르고 또는 금미달이라 한다.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500년이었다. 주나라 무왕은 그가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분봉했다.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겨갔다.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은신해 산신이 되었다. 그 나이 1908세였다."
당나라 ≪배구전≫에서 말하였다. "고려는 본래 고죽국이었다. 지금의 해주이다. 주나라는 그곳에 기자를 분봉하여 조선이라고 했다. 한나라는 3군을 나누어 설치하고 현도, 낙랑, 대방이라고 불렀다." 북대방이다. ≪통전≫(의 내용)도 이 설명과 동일하다. ≪한서≫는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의 4군이라는데, 지금 여기서는 3군이라고 말하고 이름도 같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1) 이 내용은 현존하는 ≪위서(魏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박대재, ≪삼국유사 고조선조 인용 위서론≫ 참고.
2) 해, 년(年).
3) 요(堯)임금을 말한다. 고려 정종(正宗)을 피휘(避諱)하여 高로 쓴 것이다.
4) 이것이 책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인지, 옛 기록을 의미하는 일반명사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5) 이 부분은 桓因으로 읽을지 桓國으로 읽을지 논란이 있다. 저본인 규장각본에는 囯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필사본인 석남본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인 파른본에는 𡆮으로 적혀있다. 이 글자는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고려대장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因의 이체자이다. 이규갑 편, ≪고려대장경이체자전≫ 참고.
따라서 桓國으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조선 이전에 나라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으므로 단순한 추측 수준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서영대,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昔有桓𡆮’ 문제≫ 및 조경철, ≪단군신화의 환인ㆍ환국 논쟁에 대한 판본 검토≫ 참고.
6)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삼위(三危)는 구월산, 즉 아사달산의 다른 이름이다.
7) 대승불교의 '饒益衆生(요익중생)'과 연관이 있다.
8) 개, 개수. 個 참고.
9) 곧, 바로.
10) 다스리다, 통치하다.
11) 주나라 무왕(武王)을 말한다. 고려 혜종(惠宗)을 피휘(避諱)하여 虎로 쓴 것이다.
12) 근래에는 기자조선이란 실체는 없었다고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박준형, ≪2000년대 이후 한국학계의 고조선사 연구 동향 검토≫ 참고.
13) 배구(裵矩)는 중국 수나라 때의 공신이다. ≪구당서(舊唐書)≫에는 "高麗之地, 本孤竹國也. 周代以之封箕子. 漢時分爲三郡."이란 문장이 있고,≪신당서(新唐書)≫에는 "高麗本孤竹國. 周以封箕子. 漢分三郡."로 되어 있다. 송영대, ≪ 『삼국사기』· 『삼국유사』 찬자의 『통전』 활용과 인식 고찰≫ 참고.
14) 당나라 두우(杜佑)가 지은 제도사(制度史) 관련 책이다. "裴矩·溫彥博進曰: '遼東之地, 周爲太師之國, 漢家之玄菟郡耳.'"라는 문장이 보인다. 송영대, 같은 논문 참고.
15) 후한 반고(班固)가 지은 역사서이다. 오행지(五行志)와 지리지(地理志)를 보면 원봉(元封) 3년(108 BCE)에 낙랑, 임둔, 진번의 3개 군이 먼저 설치되고, 1년 뒤에 현도군이 설치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