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글의 이미지를 다른 곳에 활용하실 경우에는 출처(닉네임블로그 이름URL 링크 가운데 한 가지)를 밝히셔야 합니다.

 

금문(청동기문자) 개요

금문(金文)은 청동기에 기록한 문자로 상나라 때부터 확인되지만 본격적인 사용은 주나라 때부터이다. 길금문(吉金文), 종정문(鍾鼎文), 청동기문자(靑銅器文字) 등으로도 불린다. 

 

利簋

이궤(利簋)는 주나라 극 초기의 기록이며 총 32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주나라 무왕의 상나라 정벌과 관련이 있다.

 

이궤(利簋)의 원래 모습 상상도 Copyright ⓒ 2021 by Worun (worungong@gmail.com) 

다른 청동기와 마찬가지로 이궤(利簋)도 녹이 슬기 전에는 황금색으로 빛났을 것이다. 

 


이궤(利簋) 탁본
이궤(利簋) 석문

1)隹(唯)2)甲子朝. 歲鼎(貞)3). 克聞. 夙又(有)4).

무왕께서 상나라를 정벌하신 것은 갑자일 아침이었다. 세성(목성)이 바르게 자리했고 승리가 들려왔다. (무왕께서) 신속히 상나라를 점령하셨다. 

辛未, 王才(在)𪧶(管)5)𠂤(師)6), 易(賜)又(右)事(史)7).

신미일에 왕께서 관(管) 지역에서 주둔하시며, 우사(右史)인 리(利)에게 동(銅)을 하사하셨다. 

用乍(作)𬀞(檀)公8)寶𱀵(尊)彝.

이로써 단공(檀公)의 보배로운 예기(禮器)를 만들었다. 


1) 珷: 무왕(武王)의 전용 글자. 武 혹은 武王이라고 읽는다.

2) 隹: 唯, 惟, 維 등으로 읽으며 의미는 같다. 연월을 나타내는 唯자 구조도 하나의 문장이다. 唯는 주요동사이다. 唯는 연월을 나타내기도 하고 날짜를 나타내기도 한다.  메이광(梅廣), ≪上古漢語語法綱要≫ 186쪽(번역서 ≪고대중국어 문법론≫ 203쪽) 주석 참고.

3) 歲鼎: ≪국어(國語)≫<주어(周語) 下> "昔武王伐殷, 歲在鶉火(옛날에 무왕께서 은나라를 정벌하실 때 세성이 순화 분야에 있었다)."라는 기록에 의거해  歲貞으로 읽는다. 순화(鶉火)는 주나라의 분야(分野: 천문가가 천하를 하늘의 이십팔수에 별러서 나눈 것)이다. 신동준, ≪국어≫, 141쪽 참고.

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2e0101&titleId=C38 

 

동양고전 종합DB

동양고전 종합DB

db.cyberseodang.or.kr

4) 又: 有로 읽는다. 고대(대략 서한 시기까지)에는 又와 有 모두 '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有}라는 단어를 나타낼 수 있었다. 이때는 '유(yǒu)'라고 읽는다. 한편으로는 두 글자 모두 '또, 다시'라는 의미의 부사 {又]를 나타낼 수 있었다. '우(yòu)'라고 읽어야 한다.  추시구이(裘錫圭), ≪文字學槪要≫, 229쪽(번역서 434쪽) 참고.

5) 管: ≪일주서(逸周書)≫ <대광해(大匡解)>와 <문정해(文政解)>의 "惟十有三祀, 王在管(13년에 왕께서 관 지역에 계셨다 )."라는 기록에 의거해 管으로 읽는다. 柬, 間, 官은 견뉴(見紐)에 속하고 첩운(疊韻)이다. 

https://ctext.org/lost-book-of-zhou/zh?searchu=%E7%AE%A1 

 

逸周書 - 管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檢索範圍: 逸周書 檢索類型: 段落

ctext.org

6) 𠂤: 師로 읽는다. 추시구이(裘錫圭), 釋殷墟卜辭中與建築有關的兩個詞——“門塾”與“𠂤” 참고. 전래문헌의 용례에 의거해 '주둔하다'라는 의미의 次로 읽기도 한다. 

7) 金: 동(銅, bronze)을 의미한다.

8) 𬀞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1년> "昔周克商, 使諸侯撫封, 蘇忿生以溫爲司寇, 與檀伯達封于河(옛날에 주나라가 상나라에 승리했을 때 제후들에게 각기 봉지를 분여할 때 소분생을 온 지역의 사구로 삼았고 단백달과 함께 하내에 봉했다)."라는 기록에 의거해 檀公으로 읽는 견해가 있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낫다.  신동준, ≪춘추좌전上≫, 680쪽 참고. 

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1e0203&titleId=C166 

 

동양고전 종합DB

동양고전 종합DB

db.cyberseodang.or.kr


https://youtu.be/Gzmnzhzr_hY

모성재에서 월운 씀

刀 갑골문

刀가 칼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갑골문의 刀를 보면 솔직히 그닥 칼처럼 생기진 않았다. 사실은 칼날 모양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刃은 갑골문에서 생략된 칼날 부분에 점을 찍어 강조함으로써 {칼날}이라는 의미를 기록했다.

刃 갑골문


https://www.youtube.com/watch?v=faSeSifBCHw 

모성재에서 월운 씀

又 갑골문

又는 오른손을 본뜬 글자이며, 右의 본자이다. 원래 의미는 {오른손}이다. 가차되어 {또}라는 의미를 나타내게 되자 한 글자에 여러 의미가 들어가 혼란이 생겼다. 이에 口를 붙여 右를 만들어냈다. 가차는 문자 현상이다. {오른손}이란 의미는 파생(인신)을 통해 {돕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오른손' 혹은 '오른팔'은 비유적인 의미로 '중요한 역할을 맡아 도와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다시 한 글자에 의미가 늘어나 혼란이 발생한다. 따라서 人을 붙여 佑(혹은 示를 붙여 祐)를 만들어냈다. {돕다}라는 의미에서 다시 '나를 도와주는 우호적인 사람'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역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又 2개를 겹쳐 㕛(友)를 만들었다.


https://youtu.be/bbBBJCPJyMI

모성재에서 월운 씀

出 갑골문

出은 '나오다, 나가다, 출발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이다. 현대 해서체의 모양은 두 개의 山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산이 아래위로 솟아나오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 낭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해서체는 위진시대를 거쳐 당나라 이후에야 정립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설은 근거가 없다. 出의 갑골문 형태는 止와 凵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움집에 살았는데 凵 혹은 𠙵은 움을 본뜬 것이다.("坎(감, 구덩이)의 상형 초문은 본래 "凵"으로 되어 있다). 전체의 자형은 발이 움집을 떠나는 것으로 밖에서 나가는 것을 나타내었다. 1) 그렇다면 '들어오다, 들어가다, 도착하다' 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발을 나타내는 止를 상하반전시키면 되지 않을까?

各 갑골문

실제로 갑골문에는 그런 글자가 있다. 이것은 𢓜(⿰彳各)의 초문(初文)이다. 자형은 발이 움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온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2) 各자의 소리를 가차하여 '각각, 각별' 등의 추상적 의미를 가지는 단어를 나타내었고, 본래 의미인 '도달하다, 오다' 등의 의미는 格자를 차용하여 표현하게 되었다. 3) 에기(禮記)≫<대학(大學)>에 나오는 "格物致知(사물의 이치에 이르러 나의 지식을 지극히 하다)"의 格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1) 추시구이(裘錫圭) 저, 이홍진 역,  ≪중국문자학의 이해≫(원서 ≪文字學槪要≫), 234쪽 참고.

2) 추시구이(裘錫圭) 저, 이홍진 역,  같은 책, 234, 235쪽 참고.

3) 김혁 저, ≪한자, 그것이 알고 싶다≫, 177쪽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8MsClg4cP8 

모성재에서 월운 씀

+ Recent posts